영혼과의 조우 by 김상운 님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자 필연을 가장한 우연의 연속이다.

우연한 기회에 전북 국학원 대표님께 평소 내가 품고 있던 궁금증을 말씀드렸다.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을 충분히 공감가는데

죽고 나서의 완성? 이런 풍문에 대한 공감은 이해는 가나 100 % 와닿지 않았다.

여기에서의 아다리가 맞지 않는 하나의 퍼즐 조각 즉 연결고리는 사후세계 영혼에 대한 인정이자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내 영혼에 대한 인식은 앎음 앎음 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내놓기 싫은 치부마냥 선뜻 내놓을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누가 그랬던가? 철학자 라캉은 말한다.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다. 라고...

ㄴ ㅏ 또한 사회적 인식에 의한 무의식이 발동되고 있었다.

공공연하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사이비 취급을 한다. 내 무의식 또한 대타자의 담론과 함께 였던 것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시는지 대표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은 나의 무의식 세계에서

영혼과의 조우를 할 수 있게 해주셨다. ㅁ ㅏ치 갓난아기가 첫발을 내딛는 것처럼.

책의 본론을 이야기 하자면 아직 한번 곱씹은 바로는 풀어내기 한참 모자르고 부족하다.

두 세번 읽어 되새김질 한 후에야 두발로 겨우 설수 있을 거 같다.

김상운 작가를 이야기 하자면 얼핏 석운님께서 말씀하시길 소중한 가족 두명을

하늘나라로 보내셨다고 한다. 얼마나 가슴 아프고 절망적이었을까? 그 분의 아픔과 고통을

지레 짐작할 수는 없지만 이런 아픔을 감내하시어 내면의 내공을 닦으셨다.

나라면 아마 짐작컨대 삶의 일말의 희망을 볼 수 있었을까 ?? 라는 회의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저명한 과학자들의 진술과 고증 이성적인 사례들로 책은 충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것들을

균형감있게 풀어내셨다. 눈에 보이지 않는 ㅈ ㅓ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 그 너머에는 ?

마지막으로 영혼에 대한 화두를 던저주신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한달 후에 스터디를 하자고 하셨는데 도우님들의 다양한 세상의 눈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끝.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테의 신곡  (0) 2014.05.28
독서천재 선목  (0) 2013.06.16
페로몬  (0) 2013.04.20
개미의 고통  (0) 2013.04.20
잠 by 무라카미 하루키  (0) 2013.02.20

2014. 5. 27

단테의 신곡, 철학적이며 심미적이며 선과 악의 대결이 분명한 고전 중에 명작.

단테라는 이름이 주는 네임 벨류는 전혀 그의 작품을 읽어 보지 않았음에도 귓가에 앵앵 거리는 듯 ..

수 번이나 책을 펼치어 들었지만 방대한 양과 어려운 서술적 풀이는 나를 주저 앉게 만들었다. stumble

달달한 쪼콜렛을 좋아하는 초딩 입맛인 나에게 딱인 책이 있었으니,, 만화로 독파하는 단테의 신곡...

물론 작가의 문맥에 담겨있는 깊은 의미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깊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만화로 보는 것만으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단테의 신곡을 앎으로서 아는 째를 낼 수 있을 정도랄까? 솔직히 나의 경우는 책을 읽고 나도 한달 후에면 대부분의 내용을 다 까먹기 때문에 시놉시스 위주의 만화로 구성된 단테의 신곡이 읽기도 편하고 간편했다. 문논 빨리 빨리 주의인 내 성격의 발로이긴 하다. 충분히 인정한다.

여기서 나오는 주인공인 단테는 베아트리체라는 아리따운 여성을 깊게 사모한다. 서로 일면식만 있을 뿐 대화조차 커피 한잔 조차 해보지 않았지만 깊은 짝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이름모를 이유로 세상을 떠나자 단테는 깊은 시름과 방황에 휩싸인다. 숲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배회하다 어느 순간 맹수들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베르길리우스라는 도우미이다. 그는 시인으로 인간계의 사람이 아닌 천사아닌 천사라고 생각이 된다. 베아트리체의 부탁을 받고 단테를 지옥부터 연옥까지 해서 천국으로 즉 베아트리체에게 인도하는 하나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단테의 신곡은 크게 보면 지옥편, 천국편으로 나뉘는데 지옥 첫번째 층에는 내가 생각치도 못했던 위대한 깨달은 이들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당대의 철학자로서 현세에대 이름을 올리는 그들이 지옥의 첫번째 층에 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니다. 이유인 즉은, 그들은 현세에서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났기에 예수의 구원과 축복을 받지 못했단다. 내가 제일 어이 없어하는 기독교관 중에 하나인 부분이 단테의 신곡에 그대로 녹아져 내려져 있다. 아주 배타적이고 편협된 사고 방식인 기독교관이기에 한번 더 충격이 었다. 혹 그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예수 이전에 태어나셨는데 그분도 그럼 지옥에 가셨겠네요?

크리스천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에 나는 그들의 앙다문 입을 응시하였고 역시나 그들은 맞아요 지옥에 가셨겠죠. 한다. 무튼 그들의 세계관이니까 맞다 틀리다 문제는 아니겠다. 물론 사후세계를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그냥 다르다고 인식할 뿐이지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상식적으로.

무튼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면서 많은 죄와 욕심, 탐욕, 게으른 사람, 자살한 사람, 타인을 힘들게 한 사람 등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과연 나 또한 지옥에 가지 않을 정도로 떳떳한가?라는 질문에 흔쾌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선한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과 어떻게 살아야할까? 라는 두가지 화두가 나에게 안겨왔다. 거의 결론으로 가서 단테가 하는 말이 참 인상적이다. 모든 행동의 근원과 시작, 이유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참 많은 이슈를 몰고다니는 사랑이 참 고귀한 진리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냐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일체유심조가 아니겠는가?

마지막 장면에서 단테는 애뜻한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하지만 지옥에서부터 연옥, 천국까지 오면서 보고 느낀 점에 크게 감명받고 깨우쳐 현세로 돌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좋은 영향을 줘야 겠다고 다짐한다. 이렇듯 만화소설은 약 30분 내에 끝나서 큰 감명을 주지 못했지만 그 당시 실제 단테의 삶이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에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단테는 피렌체 출생으로 정의를 사랑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지만 이를 못마땅하는 사람에 의해 유배당하고 힘든 생활을 이어나간다. 이런 고통과 시련을 지옥으로 표현했다는 역자의 해설에 충분히 공감되었다. 그리고 그가 아주 방대한 양의 소설을 쓰면서 라틴어가 아닌 많은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피렌체어로 소설을 작성해 출간했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단테의 신곡 divine 한 god 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이러한 지옥과 천국을 만들고 종교를 만들었으리라. 그래도 참인지 거짓인지 모를 fact 에 대해 자기만의 신념과 종교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의미가 있고 흔들리는 인간에게 많은 의지가 되리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0) 2014.07.17
독서천재 선목  (0) 2013.06.16
페로몬  (0) 2013.04.20
개미의 고통  (0) 2013.04.20
잠 by 무라카미 하루키  (0) 2013.02.20
2013.06.16~2014.06.16
1년 100권 독서
ESS 50권
Om 50권
Why?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0) 2014.07.17
단테의 신곡  (0) 2014.05.28
페로몬  (0) 2013.04.20
개미의 고통  (0) 2013.04.20
잠 by 무라카미 하루키  (0) 2013.02.20

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내분비샘에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 호르몬은 인간의 몸 내부에서만 영향을 끼친다. 호르몬은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몸 안에서만 순환한다. 지금 어떤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려 하거나, 땀이 나려 하거나, 얼굴을 징그리려 하거나, 소리를 치려 하거나, 울려고 한다고 치자. 그런 것은 그 사람의 일일 뿐, 다른 사람들은 그를 덤덤하게 바라볼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기도 할 터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성이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미가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호르몬이 몸 내부에서 순환할 뿐만 아니라 몸 바깥으로 나가 다른 개미들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몸 밖으로 나가는 호르몬이 이른바 페로 호르몬 또는 페로몬인데, 이것이 있는 덕분에, 개미들은 한 마리가 소리치려 하거나 울려고 하면 수백만의 개미가 동시에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남들이 경험한 것을 똑같이 느낀다는 것, 자기 자신이 느낀 것을 남이 똑같이느끼게 한다는 것은 놀라운 감각임에 틀림없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0) 2014.07.17
단테의 신곡  (0) 2014.05.28
독서천재 선목  (0) 2013.06.16
개미의 고통  (0) 2013.04.20
잠 by 무라카미 하루키  (0) 2013.02.20

개미의 고통
개미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고통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개미들에겐 고통을 느끼게 할만한 신경 조직이 없다. 신경이 있다 해도 통증을 전달하는 물질이 없다. 개미 몸의 일부를 잘라 버렸을 때, 그 토막이 몸뚱이의 나머지 부분과 떨어져서도, 아주 오랫동안 계속 <살아 움직이는>것을 어쩌다 보게 되는 것도, 그런 사실로 설명할 수가 있다. 개미에게 고통이 없다는 사실이 새로운 공상 과학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고통이 없다는 것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고, <자아>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예기도 될 수 있다. 개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개미 사회의 응집력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랫동안 곤충학자들은 그런 이론에 기울어 있었다. 그 이론은 모든 것을 설명하면서도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은 또 다른 이점을 지니고 있다. 즉, 아무런 거리낌없이 개미들을 죽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어떤 동물이 있다면, 나는 그 동물을 무척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미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목이 잘린 개미는 특별한 냄새를 발한다. 고통의 냄새인 것이다. 개미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냄새가 생길리 없다. 개미에게 전기적인 신경감응은 없지만, 화학적인 신경 감응은 있는 것이다. 개미는 자기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 고통을 느낀다. 제 나름의 방식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인데, 그 방식은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하지만 고통을 느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0) 2014.07.17
단테의 신곡  (0) 2014.05.28
독서천재 선목  (0) 2013.06.16
페로몬  (0) 2013.04.20
잠 by 무라카미 하루키  (0) 2013.02.20

인도 자이푸르에서 용인 시골 소녀 깽님과 같이 여행을 했다. 그 인연으로 남해 달품 게스트 하우스에서 다시 만났다.

간만에 만났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은 듯 서로 디스를 해댄다... 살 쪘냐는둥ㅋㅋㅋ

나는 여수로 그녀는 용인 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나에게 건넨 책 선물... 남자의 물건...

조그만한 메모지에 담긴 편지에 감사함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선물이 이렇게 고마움이 될 줄이야...ㅋㅋ

실은 집에 와서 봤더니 남자의 물건이라는 책이 있었다. 하지만 내 책은 다른 의미의 선물인 것이었다.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다가 카카오 스토리를 통해서 생일인 것을 알게 되어 책 선물을 한다.

홍지서림에 들러 기웃거리다 문득 눈에 들어온 '잠' 이라는 책! 읽기 편하게 반이 그림이고 두께가 얇다.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이라는 보증에 몇 장 읽어보고 카드를 건넨다.

도서관에 와서 끝까지 다 읽었다.

잠에 대한 새로운 고찰... 흥미로웠다.

잠이란 휴식을 취하는 행위는 사회적 보편 타당한 통념이다. 하지만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잠을 자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을 더욱 길게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소설 속 그녀는 어느 순간 가위에 눌리면서 그 때부터 잠을 청하지 못한다.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함구한다. 병원에서도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며 그 누구도 이해조차 못할 것이기에.

그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시간이 감에 따라 잠을 자지 않는 것에

스트레스가 점점 없어진다. 그럴 수도 있다고 자연스러히 받아들인다.

그 시간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라는 책을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 때부터 그녀는 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잠으로부터 시작된 존재의 이유, 죽음에 대한 의문, 쳇바퀴 돌 듯한 익숙함 등

평소 그냥 살아지던 그녀의 모습에서 살아가는 주체적 행동체로서 탈바꿈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특이하게도 이 책을 한 호흡에 단숨에 써내려 갔다고 한다.

그의 삶과 생명에 대한 고찰, 일반적인 상념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을 제시하면서

익숙한 것을 한번 돌아보게 하는 그런 언어도단의 마력을 가진 것 같다.

나는 또 한번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평소 상실의 시대의 야설적인 면을 좋아하긴 했지만ㅋㅋ

무튼 선물에서 시작된 나의 선의는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고로 선물은 선물로 돌아온다.ㅋㅋㅋ

남해에서 다시 재회한 깽님과 회 한사발에 소주 한잔 후 충렬사 거북선을 바라보며:)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0) 2014.07.17
단테의 신곡  (0) 2014.05.28
독서천재 선목  (0) 2013.06.16
페로몬  (0) 2013.04.20
개미의 고통  (0) 2013.04.20

+ Recent posts